[삼시세끼 인권, 전준석 칼럼] "저상버스 100%라더니"... 휠체어 보고도 쌩 지나친 버스

'숫자'로만 달성된 보여주기식 행정

고장 난 리프트와 무정차 통과에 두 번 우는 장애인들

배려를 넘어선 '시스템'의 변화가 절실하다

사진=AI생성

 

"손을 아무리 흔들어도 못 본 척 그냥 지나갑니다. 벌써 세 대째예요." 며칠 전,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 A씨가 영하의 날씨 속 버스 정류장에서 울분을 토했다. 서울시가 저상버스 도입률을 높이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현장의 실상은 처참하다.

 

최근 장애인 단체의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휠체어 승객이 탑승 의사를 밝혔음에도 정차하지 않고 지나친 버스가 10대 중 3대에 달했다. 운전기사와 눈이 마주쳤지만, 기사는 고개를 돌리고 액셀을 밟았다. 이것은 단순한 승차 거부가 아니라 명백한 '승차 유기'다.

 

35년 경찰 생활 동안 수많은 집회 시위 현장을 지켰지만, 장애인 이동권 시위 현장만큼 처절한 곳은 없었다. 그들이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을 기어가며 외치는 것은 "특별한 대우를 해달라"는 떼쓰기가 아니다. 그저 비장애인들처럼 학교에 가고, 직장에 출근하고, 친구를 만나 밥 한 끼 먹고 싶다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요구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들의 절규를 '출근길 민폐'나 '불법 시위'로 규정하고 범죄자 취급을 하기에 바쁘다.

 

운 좋게 버스가 멈춰 서도 문제는 지금부터다. 기사가 헐레벌떡 내려 리프트를 작동시켜 보지만, 관리 소홀로 녹슨 기계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아, 이거 고장 났네. 다음 차 타쇼." 기사의 무심한 한마디에 A씨는 다시 하염없이 다음 차를 기다려야 한다. 고장 난 것은 리프트뿐만이 아니다. 교통약자를 위한 우리 사회의 시스템 자체가 고장 나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더욱 견디기 힘든 것은 버스 안 승객들의 시선이다. 리프트가 작동하는 3~4분 남짓한 시간 동안, 버스 뒤로 늘어선 차들의 경적이 요란하게 울린다. 승객들은 "아침부터 재수 없게", "바빠 죽겠는데 왜 타가지고"라며 노골적으로 한숨을 쉬고 혀를 찬다. 그 따가운 시선과 혐오의 말들 속에서 장애인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여야 한다. 내가 낸 요금을 내고 타면서도 '민폐 덩어리'가 되는 순간이다.

 

지하철이라고 사정은 다르지 않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역사에서 휠체어 리프트를 타는 것은 목숨을 건 도박과 같다. 가파른 계단 위를 덜컹거리는 기계 하나에 의지해 오를 때, 장애인들은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극심한 공포를 느낀다. 실제로 리프트 추락 사고로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은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누구도 죽지 않고 이동하고 싶다"는 그들의 외침은 과장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비명이다.

 

대안으로 꼽히는 '장애인 콜택시' 역시 '희망 고문'에 가깝다. 부르면 바로 오는 일반 택시와 달리, 콜택시는 배차 신청 후 2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예사다. "언제 올지 모르니 화장실도 못 가고 현관 앞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B씨의 하소연은 이들이 겪는 '시간의 불평등'을 보여준다. 이동을 예측할 수 없는 삶은 결국 사회 활동의 단절과 고립으로 이어진다.

 

정부는 매번 "예산이 부족하다", "단계적으로 도입 중이다"라는 앵무새 같은 답변만 반복한다. 수십 년째 '검토 중'이라는 말 뒤에 숨어,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하고 있다. 100% 도입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단 한 대가 다니더라도 휠체어가 눈치 보지 않고 탈 수 있는 환경, 기사가 승객에게 "교통약자 탑승 중이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매뉴얼과 교육이 먼저다.

 

이동권은 시혜나 동정이 아니다. 내가 낸 세금으로 만든 도로와 대중교통을 나만 이용할 수 없다면 그것은 차별이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 장애인이다. 사고로, 혹은 노화로 언젠가 우리도 휠체어에 앉게 될지 모른다. 지금 버스 밖에서 손을 흔드는 그 사람을 외면한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또한 차가운 도로 위에 버려지게 될 것이다. 버스가 멈춰야 세상도 함께 간다.

 

 

칼럼니스트 소개

 

 

전준석 칼럼니스트는 경찰학 박사이자 35년간의 경찰 생활을 총경으로 마무리한 치안 행정 전문가다. 현재 한국인권성장진흥원 대표로서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데 헌신하고 있다. 인사혁신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등 주요 기관에서 전문 강사로 활동하며 성인지감수성, 4대폭력 예방, 자살 예방 및 직장 내 장애인 인식 개선, 인권 예방, 리더십 코칭 등 폭넓은 주제로 사회적 가치를 전파하는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범죄심리학', '다시 태어나도 경찰', '그대 사랑처럼, 그대 향기처럼', '4월 어느 멋진 날에' 등이 있다. 경찰관으로 35년간 근무하면서 많은 사람이 인권 침해를 당하는 것을 보고 문제가 있음을 몸소 깨달았다. 우리 국민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차별이라는 것이 없어지고 인권이 성장할 것이다. 그런 생각에서 [삼시세끼 인권, 전준석 칼럼]을 연재 중이다.

작성 2026.01.15 07:00 수정 2026.01.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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