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 뒤가 더 힘들었다…인권위 사례집이 경고한 '성희롱 2차 피해'

국가인권위원회, 최근 2년간 시정 권고한 성희롱 사례 20건 담은 「성희롱 시정권고 사례집」 제12집 발간

성희롱보다 사건 이후가 더 큰 상처…신고 과정의 따돌림·협박·불이익 등 2차 피해 증가

예방교육도 전환 요구…금지행위 암기보다 권력관계와 조직문화, 피해자 회복 중심 접근 필요

성희롱 사건이 끝난 뒤에도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최근 성희롱 진정사건에서 신고 이후 발생하는 정신적·신체적·경제적 피해와 집단 따돌림, 폭언·폭행 등 이른바 '2차 피해'가 새로운 인권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인권위는 이러한 문제를 반영해 최근 2년간 시정 권고한 성희롱 사건 20건을 담은 「성희롱 시정권고 사례집」 제12집을 발간하고, 예방교육과 조직문화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례집 발간'보다 주목해야 할 변화는 2차 피해의 증가

 

국가인권위원회는 성희롱 진정사건의 특성상 피해자의 신원 노출과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개별 사건을 보도자료로 공개하지 않는다. 대신 주요 결정례를 2년 단위로 정리한 사례집을 발간해 공공기관과 기업, 교육기관 등이 예방교육과 사건 대응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번 제12집에는 2024년 1월부터 2025년 12월까지 시정 권고한 대표 사례 20건이 수록됐다.

 

인권위가 이번 사례집에서 가장 강조한 부분은 성희롱 행위 자체보다 사건 처리와 회복 과정에서 발생하는 2차 피해다. 피해자들은 성희롱 피해에 이어 정신적·신체적·경제적 피해는 물론 집단 따돌림과 폭언, 폭행, 조직 내 불이익까지 호소하는 경우가 꾸준히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위는 성희롱이 직장 내 위계질서와 권력 불균형에서 비롯되는 성차별 문제인 만큼 피해자의 노동권을 보호하고 일상 회복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조직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표 사례가 보여준 조직문화의 민낯

 

사례집에는 성희롱뿐 아니라 조직의 부적절한 대응이 피해를 키운 사례들이 다수 포함됐다.

한 공공기관에서는 부서장이 여성 직원에게 자신의 성 경험을 이야기하며 반복적으로 사적인 성 경험을 질문하고, 자신의 방에 물을 가져다 놓으라고 지시한 뒤 이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른 직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질책했다. 인권위는 이러한 발언이 질문의 의도와 관계없이 성적 굴욕감과 혐오감을 유발하는 성희롱에 해당하며, 사적인 심부름 강요와 공개 질책 역시 인격권을 침해하고 근무환경을 악화시킨 행위라고 판단했다. 이에 징계와 함께 성희롱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도록 권고했다.

 

채용 과정에서 발생한 성희롱도 대표 사례로 소개됐다. 한 지역 언론사 회장은 여성 지원자에게 결혼 계획을 반복적으로 묻고 "슬림하게 입고 오라"며 복장을 언급했으며, "합격하면 한우를 사주겠다", "소맥 한잔하면서 이야기하자"고 말한 뒤 신체 접촉과 단둘이 회식을 제안했다. 지원자가 부담을 표시하자 합격을 번복하는 취지의 문자를 보냈다. 인권위는 채용 과정에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성희롱과 고용상 불이익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피해자에게 200만 원을 지급할 것과 특별인권교육 이수를 권고했다.

 

또 다른 사건에서는 성희롱 신고 이후 조직의 대응이 더 큰 문제가 됐다. 피해자 신원이 가해자 측에 유출됐고, 관리자들은 피해 사실을 축소하거나 "끝까지 추적해 법적 조치를 하겠다"는 협박성 발언을 했다. 인권위는 이를 명백한 2차 피해로 판단하고 관리자 대상 특별 예방교육과 피해자 보호조치, 관리·감독 강화를 권고했다.

 

통계가 말하는 성희롱의 현실

 

이번 자료에는 성희롱 진정사건의 장기적인 흐름도 함께 제시됐다. 2005년 이후 인권위에 접수된 성희롱 진정은 모두 4,372건이며, 2025년 한 해 접수 건수는 350건으로 최근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위원회 설립 이후 2025년까지 처리한 사건은 3,969건이고, 이 가운데 권리구제가 이뤄진 사건은 858건(21.67%)이다. 시정 권고는 302건, 합의종결은 273건, 조사 중 해결은 249건으로 집계됐다.

 

권고 사건을 분석한 결과 성희롱은 대부분 조직 내 권력관계에서 발생했다. 직접고용 상하관계가 전체의 70.2%를 차지했고, 피해자의 78.1%는 평직원이었다. 가해자는 중간관리자가 가장 많았으며 대표자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발생 기관은 기업과 단체 등 민간 부문이 65.2%로 가장 많았지만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학교 등 공적 부문도 34.8%에 달했다. 발생 장소는 사업장과 기관 내부가 48.8%로 가장 많았고 회식 장소가 22.4%로 뒤를 이었다. 성희롱 양태는 언어적 성희롱이 가장 많았지만 신체접촉이 포함된 사건은 전체의 52.7%를 차지해 절반을 넘었다.

 

예방교육도 '하지 말라'에서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로 바뀌어야

 

이번 사례집은 새로운 법률이나 성희롱 판단기준을 제시한 자료는 아니다. 그러나 실제 시정 권고 사례를 통해 조직이 사건을 어떻게 예방하고, 피해자를 어떻게 보호하며, 조사 과정에서 어떤 대응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실무자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성희롱 예방교육은 단순히 금지행위를 나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권력관계와 조직문화, 피해자의 노동권과 회복, 2차 피해 예방까지 함께 다루는 방향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인권위는 이번 「성희롱 시정권고 사례집」 제12집과 「성차별 진정사건 결정례 평석집」을 홈페이지 '결정례 → 결정례집'에서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도록 공개했다. 실제 사례와 판단 기준을 담은 이번 자료는 공공기관과 기업, 교육기관의 성희롱 예방교육과 내부 대응체계를 점검하는 데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례집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성희롱은 사건이 접수되는 순간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피해자가 안전하게 회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과정까지 포함하는 인권의 문제라는 점이다. 성희롱 예방의 실효성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아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신고 이후 피해자를 어떻게 보호하고 조직이 어떤 책임을 다해야 하는지가 앞으로의 예방교육과 조직문화 개선의 핵심 과제로 제시되고 있다.
 

 

작성 2026.07.12 16:18 수정 2026.07.12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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